3.1절, 구래(舊來)의 한국 사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하여 한국사의 자주적 체계화를 새롭게 시도한 역사적 인물, 단재 신채호 선생의 포부와 구상을 반추해보면 어떨까?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정립했다. 이 명제는 선생이 민족사관을 1924년 최초로 쓰여진 본격적인 근대적인 역사 방법론을 다룬 '조선상고사'에서 수립했다.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사관이라는 격렬한 문제의식은 이 시기 사회관이나 민족운동 노선과 일정하게 대응되는 것이다. 이 명제는 중화(中華)주의,일제 식민(植民)주의 사관에 맞서 우리나라 최초로 쓰여진 본격적인 근대 역사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어 ? 어디서 들어 봤는데
선생은 화랑도 정신을 강조하며 심산 김찬숙과 설전을 벌였다. 선생은 "어찌하여 우리 화랑도 정신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내가 뉘우칠 것이 무엇인가 우리 민족에게 공자보다 훨신 훌륭한 성현이 없었나? 우리에게 따로이 언어가 없었나?
우리 문자도 있었건만 자기나라 전통을 무시하고 성현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남의 전통을 재것인양 아끼고 보살피면서 정작 제것은 등안시 해 온 결과가 무엇이냐? 제나라까지 강도질 당해 백성은 노예가 되고, 지식층은 중국까지 쫓겨와서 망국민이 된 탄식만 토로했지 어디에서 부터 잘못됐는지 뉘우치지 못하는 자네같이 어리석은 자들이 조선의 자손으로 있어, 독립은 고사하고 유학,성현,공자에 매달려 도무지 정신을 못차리니"라며 원통하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심산은 "공자의 가르침을 받았는 데 어찌하여 은혜에 그 따위 몰상식한 언행으로 능욕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선생을 꾸짖었다. 두 사람의 설전을 조용히 듣고 있던 이회영 선생은 "두사람 이제 그만하시오. 심산이 하는 말도 일리는 있소,
그러나 단재가 하는 말은 모두 옳은 말이오. 우리 민족 해방운동의 큰 대의를 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혈맹으로 뭉친 동지들인데 이깟 사소한 일로 싸우면 되겠소? 서로에게 해로운 일이니, 그만 화해하시오. 그래도 오늘은 단재 말 중에 많은 것을 얻었소이다. 고맙소" 라고 말했다. 우리 현대 삶은 역사적 사회적 진공시대의 산물은 아니다.
장 혜 린 기자 hljang@sisabaro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