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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향기 풍기는 매화와 역사 속 인물 ‘황희’ 이야기
  • 기사등록 2019-03-15 17:33:23
  • 수정 2019-03-15 17: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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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나뭇가지의 꽃들이 활짝 얼굴을 내밀었다. 매화 나무는 옛 선비정신의 상징이다. 김시습은 달빛에 비친 매화 사랑에 호를 매월당이라 지었다. 매화 사랑이 남달라 100수가 넘는 매화시를 남긴 정승도 있다. 바로 퇴계 황희(黃喜, 1363~1452년)다.

 

황희는 조선 초기 정치와 문물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했다. 황희는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 강릉부사 황군서의 아들로 개성에서 태어나 고려 후기인 1389년(공양왕 1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1392년 고려가 망한 후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관직에 다시 진출했다. 태종의 신임을 받아 형조,병조,예조 판서를 역임했다. 1418년 태종의 장자인 양녕대군의 폐위 반대와 세종즉위에 반대해 남원 유배를 가기도 했다. 1422년 세종의 부름을 받은 황희는 1426년 우의정에 이어 1427년 좌의정, 1431년 영의정에 올랐다. 황희는 90세에 이르도록 정승으로 활약하면서 최장기간, 최고령 영의적 기록을 남겼다.

 

황희는 몇 차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면서 청백리 재상에 오점을 남겼다. 분명한 것은 부드러우면서도 할 말은 다한 명재상이란 사실이다. 성품이 지나치게 관대해 제가(齊家)에 단점이 있다고 평가하는 역사가도 있다. 황희가 나약한 인물일까? 태종실록에는 황희는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태종앞에서도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고 말한 인물로 묘사된다. 태종실록에는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위할 당시 장자를 세자로 삼은 원칙이 무너지면 후대에도 유사한 일이 일어 날 수 있다“며 유배길을 택한 일화가 나온다.

 

‘세종실록’에는 “황희는 재상 자리에 있던 20여년간에 의견이 너그럽고 후한 데다가 분경(紛競·인사청탁)을 좋아하지 않고, 나라사람의 여론을 잘 진정(鎭定)하니, 당시 사람들이 진정한 재상이라 불렀다.” 라는 기록이 나온다. 역사가들은 황희를 늘 권력의 정점에서 균형 감각을 잃은 정승으로 평가한다. 황희는 아흔 줄에 이르러서도 건강을 잃지 않았다. 1949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원로로서 세종과 문종의 자문에 응했다.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라는 그의 유언이 매화향기를 타고 전해오는 듯하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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