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서울대공원 제공, 덕리란)
우리 헌법은 노동3권을 보장해 노사간 건전한 긴장관계를 지향한다. 하지만 노동 현실은 '건전한'은 사라지고 노사는 서로 싸워서 이길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느 외국계 회사의 경영자는 "한국의 노조는 회사를 싸원서 이길대상으로만 여긴다'며 우리 노사 관계를 비판하기도 한다. 노조위원장을 역임한 한 인사는 "사용자는 노조를 싸워서 이길 대상으로만 여겨 원만한 합의 도출이 어렵다"고 한다.
우리 한국인은 공간적인 집단의식이 매우 강하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듯이 농경문화의 특징인 '우리'라는 집단의식이 발달해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우리 의식은 물론 바람직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너무 배타성을 지니게 되면 '우리'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관대하지 못하게된다.
우리의 반대는 "그들"이 된다. 우리만을 강조하다보면 우리가 아닌 모두가 그들이 되며 이때 그들을 마치 적처럼 취급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내편이고 그들은 적이라는 무의식적 잔재때문이다. 배타성이 문제인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이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객관성과 공사의 구별은 있어야 한다.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다"라는 식의 맹목적인 우리편에 대한 애착은 건전한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않는다.
노사간 집단이기주의도 우리란 과도한 집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퇴행성은 사회,정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객관적인 선과 악 혹은 공과 사를 떠나 무조건 우리 편끼리 뭉쳐야 한다. 우리편끼리 서로 도와야한다고한다. 우리 편이 저지른 잘못은 무조건 감싸고 남들 혹은 그들이 범하는 잘못에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비판만 한다면 그 사회는 건전하다고 말 할 수 없다.
건전한 사회를 위하여 나의 주장과 상반된 입장에 있더라도 이번 기회에 자신의 무의식을 한번 찾아보는 것도 건전한 삶을 위하여 좋을 듯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중요한 숙제를 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