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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백보'와 정치, 그리고 본질적 차이를 묻다
  • 기사등록 2015-05-31 16: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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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보 백보(五十步百步)의 유래는 맹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맹자는 기원전 371년에 태어났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연대는 모른다. 5세기에서 3세기까지 이어진 전국시대의 중간쯤, 4세기 중엽에 살았던 사람이다.

 

'오십보백보'는  전국시대... 그 어지럽기만 하던 세상에 인도주의자적인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고, 인(仁)과 (義)를 설명하면서 다닌 철저한 이상주의자인 맹자는 당시의 사람들 눈에는 꽤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맹자는 당시의 사상가나 책략가들이 그랬듯 많은 왕을 만나 유세를 시도하곤했다. '오십보 백보'라는 말은  맹자가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에게 초대되었을 때의 이야기 중에 나온 말이다. 

 

원문에는 '오십보로서 백보를 비웃었다면 어찌 생각하겠소?'하는 질문에 대해 혜왕은 '불가하오. 다만 백보가 안되었을 뿐이지,이도 역시 도망치지 않았소.' 하고 대답하고 있다. 맹자의 왕도(王道)정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웃나라의 정치와 혜황의 정치는 오십 보 백보의 차이로 결국은 둘 다 같았다.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기를 도모하고, 그 안정위에 쌓여진 것으로 백성을 주인으로 하고,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애정과 예의에 가득찬 도덕국가, 교육이 충분히 보편화된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외에 아무것도 목적하지 않는 정치방식인 것이다.  비록 현대 국가원리와 차이가 있지만...

 

환언하면, 맹자가 위나라의 혜왕에게 초대되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위나라는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의 압박을 받고있었다. 혜왕이 양으로 도읍을 옮긴 것도 이 압박을 견기기 어려워서였다.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싸움을 여러 번 거듭했으나 그때마다 크게 패하여 말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혜왕은 이름난 현사나 뛰어난 인물을 불러다가 의견을 묻고, 또는 직접 채용하는 등 국운을 만회하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맹자가 초빙된 것이었다.

 

혜왕은 백성을 생각하라는 맹자의 가르침을 잘 알고있다며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며 백성의 수효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 왕은 전쟁을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전쟁터에서 양군이 맞부딪고자 신호의 북을 울렸다 하십시다. 살과 살이 맞딱뜨리는 백병전입니다. 한 병사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투구 철갑을 내동이치고 칼을 어깨에 메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백 보쯤 달려가자 멈추어 섰습니다. 또 한 놈 도망치던 놈이 있었는 데 이 놈은 오십 보쯤에서 멈추더니 백보 도망친 놈을 보고 비겁한 몸 !하고 비웃었다고 합시다. 어떻습니까. 왕이시여"

 

"허허허, 바보 같은 소리. 오십 보나 백 보나 도망친 것은 다 똑같은 것이 아니겠소 ?" "왕이시여, 그것을 이해하실 수 있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을 많이 갖고 싶어하는 폐하의 소원도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중심으로 혜왕을 유도해 갔다.

 

장 대범 기자 jyjang@sisabaro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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