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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꽃처럼 희디힌 솜덩이를 터뜨리면 좋으련만 2016-10-25
편집국 jyjang@sisabarotimes.com



 

목화(木花), 사투리로는 미영이라 불린다. 목화꽃은 아름답다. 그렇지만 전에는 꽃을 보기 위해 심은 것은 아니었다. 솜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이불을 만들었던 것이었다. 목화는 두 번 피는 꽃이라고 한다. 한 번은 실제로 소박한 꽃으로 피어나고 또 한번은 구름송이 같은 탐스런 솜으로 피어나기에 그런 말이 붙어졌다.

 

“꽃은 아름답지만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솜을 생산하니 저는 목화꽃이 좋습니다.” 영조임금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간택시 이말로 영특함을 보인 일화는 유명하다. 한데, 영조 이후 당쟁의 중심에는 늘 그녀가 있었음을 생각하면 그 간택이 정말 잘된 일이었는지 여부는 판단이 불가하여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온 나라가 민정수석의 불출석,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비리, 이화여대 입학과 학적 관리 등 수많은 의혹과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국정감사를 비롯해 지금까지 20대 국회의 행보를 보면 기대보다 실망감이 앞선다. 정치인들은 늘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한다. 현 20대 국회의원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국민의 대표자로 나섰는 지 묻고 싶다.

 

겨울이 머지 않았다. 고려말 문익점 선생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시로는 반출을 엄격하게 통제되던 목화씨를 붓대롱에 감추어서 들여왔다고 한다. 정천익이란 분은 이를 3년 재배 끝에 성공을 거두어 널리 보급했다. 정조시대 역관 이기양은 목화 씨앗을 앗는 기계인 ‘박면고거(剝綿攪車)를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예전에 한 사람이 1백 근의 면에서 씨앗을 빼내는 데 20일이 걸리던 것을 단 하루만에 해결토록했다.

 

모든 사회에는 보수와 진보 둘 다 필요하고 매 순간 존재한다. 보수와 진보 간의 적당한 갈등과 타협을 통해 시대의 정의는 끊임없이 바뀌어 가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연경에 가는 사신들은 백성에게 실용이 되는 것은 가져오지않고 금방 닳아 버리는 비단만 들여오기에 몰두한다”고 자탄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목화는 여름철에 연노란 꽃을 피운 후 열매를 맺어 가을 초입에 들어서며 익어 희디힌 솜덩이를 터뜨린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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