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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雁書) 이야기와 첫 野 여성당수 소식 2016-08-31
편집국 jyjang@sisabarotimes.com



 

끝을 모르던 폭염이 물러가고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 때는 분명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안겨 주는 듯 하다. 설령 편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군에 입대한 자식의 무탈함을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을 아는 듯.

 

편지나 소식을 안서(雁書)라고 한다. 또는 안신(雁信),안백(雁帛)이라고도 한다. 「십팔사략」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한무제(漢武帝)의 천한(天漢) 원년,(蘇武)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절의 일행으로 포로를 북방 흉노의 나라로 떠났다. 포로를 교환하기위해서였다. 그러나 때마침 흉노에 내분이 일어나 모든 사절단들은 사로잡혀 항복할 것을 강요받았다. 소무만은 끝끝내 굽히지 않았다. 그는 산허리를 파서 만든 땅굴에 감금되었으며 먹을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담요를 뜯어먹고 눈 녹인 물을 마시면서 굶주림을 견디었다. 소무가 며칠이 지나도 죽지않는 것을 본 흉노는 놀라며 북해(北海) 근처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보내어 양치기 노릇을 하게 했다. 흉노는 “이 양들이 새끼를 낳으면 고향에 보내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 맡겨진 양은 숫놈뿐이었다. 게다가 도둑이 양을 훔쳐가 버렸다. 그는 얼어붙은 흙을 파헤치고 들쥐를 잡아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으나 그래도 흉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않았다. 무제가 죽고, 소제(昭帝)가 그 뒤를 이은 시원(始元) 6년, 한나라의 사신이 흉노에 왔다. 사신은 소무를 돌려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흉노는 소무는 이미 죽었다고 대답했다. 그날밤 소무와 함께 이곳에 머물러 있던 상혜(常惠)라는 사람이 사신을 찾아와서 무언가 귀뜸을 했다. 다음 회견때, 한나라 사신은 말했다. ”한의 천자께서 상림원(上林苑)에서 사냥을 하실 때 기러기 한 마리를 쏘아 떨어뜨리셨소. 그런데 그 기러기 발목에 비단폭이 묶여 있었는 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소. 소무는 대택(大澤)속에 있었는 데 분명히 살아있소 !“ 흉노의 우두머리는 놀라는 빛을 보이며 신하와 귓속말을 하더니 말했다. ”소 무는 살아있는 모양이오.“ 꾸며댄 말은 효과를 발휘했다. 사신은 지체 없이 북해로 달려가서 소무를 데려왔다. 머리칼, 수염 할 것 없이 모두 백설같이 하얗고, 찢어진 모피를 몸에 걸친 모습은 어디로 보나 양치기의 그것이었으나 그의 손에는 한나라 사신임을 증명하는 부절(符節)이 단단히 쥐어져있었다. 소무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포로가 되어 북해 근처에서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다 보니 어느덧 1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사상 첫 여성 당수가 나왔다. 더민주는 지난 27일 전당대회를 열어 추미애(대구.경북출신)의원을 당대표로 뽑았다. 수락연설에서 ‘강한 야당론’을 과제로 제시한 신임 추대표는 29일 새누리당 이정현대표를 만나 “여(與)나 야(野)나 절박한 민생을 보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해야할 것 같다”며 “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도 서로 잘 소통하자”고 말했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덧붙이는 글]
우리 국민은 정치인들을 통해 우리의 의견을 반영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을 조율하는 통로를 찾고, 나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책이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동 시대의 정치인의 덕목에서 제외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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