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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바로타임즈= 장혜린,장훈녕기자]

6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보다 긴밀한 연합을 추구해온 유럽연합(EU)이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유로존 기업들은 영국의 EU탈퇴에 대해 역내 경제에 부정적일 것으로 보고있다. 최근 로이터등 외신은 브렉시트 발생이 EU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전망이 79%인 반면 4%만이 긍정적으로 보고있다는 영국 그랜손튼 회계법인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영국의 브렉시트를 반대하면서 EU의 안정, 나아가서 세계 정치 및 경제질서의 유지를 바라며 있지만 영국내 찬반의견이 팽팽하다.
오는 6월27일 영국에서 치러지는 EU탈퇴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영국의 잔류전망이 확대되며 금주 유로화대비 파운드화는 3주내 최고수준으로 정상됐다. 로이터등 외신은 최대 온라인 베팅업체인 윌리엄 힐의 전망을 인용, 17일 EU 잔류 확률이 80%까지 상승하는 등 조사대상의 70%이상이 잔류를 전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만약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서 포플리즘 정당을 중심으로 EU탈퇴를 묻는 국민투표 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유로화가 도입됐지만 영국은 아직까지 파운드화를 고집하고 있다. 이번 치러지는 영국의 브렉시트와 관련해 유럽연합(EU)과 1974년 치러졌던 1차 브렉시트에 대해 살펴보자
브렉시트 발단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지금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 발생한 바 있다. 유럽연합의 출범기로 돌아가 보자. 영국은 EEC출범 직후부터 가입을 희망했지만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반대에 봉착하여 가입이 지체됐다. 1973년 보수당 정권에서 EEC 가입을 성사시켰는 데, 1974년 10월 총선에서 정권을 잡은 노동당 정부는 총선 공약대로 EEC 잔류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했다. 이듬해인 1975년 6월에 국민투표가 치러졌는 데, 투표자의 67%가 EC잔류에 찬성했다. 이 투표는 영국 전역에서 치러진 첫 번째 국민투표(Referendum)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영국 경제는 1973년의 제1차 오일 쇼크의 여파로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1974년과 1975년에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고통에 쳐했다. 어렵게 합류한 EEC 가입이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난 여론에 따라 EEC탈퇴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지게 된 것이다. 캠페인 기간 중에 보수당 중심으로 잔류파들의 집중적인 홍보가 효과를 거두면서 영국의 제1차 브렉시트가 무산되었다. 이후 40여년이 지난 현재 캐머린 총리가 소속된 집권 보수당내 의견은 반반으로 나뉘어 진 상태다. 국제사회는 영국의 브렉시트를 반대하면서 EU의 안정, 나아가서 세계 정치 및 경제질서의 유지를 바라며 있지만 영국내 찬반의견이 팽팽하다.국제금융가를 대표하는 월가의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JP Morgan등은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국제금융계가 혼돈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한편 유럽통합의 역사는 지난 1957년 6개국(벨기에,프랑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델란드, 서독)이 로마조약을 체결하고 1958년부터 EEC(European Economic Community)가 출범하면서 시작됐다. EEC는 회원국간 공동시장 창출, 관세동맹등 경제통합의 이득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과거 제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의 참화가 유럽에서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이후 EEC는 회원국을 12개국으로 늘리고 경제통합단체를 점차 심화시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된 1993년부터 유럽공동체(EC)로 이름을 바꾸고 유럽연합(EU)으로 자연스럽게 확대했다. EU는 단일 역내 시장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2002년부터는 단일 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했다. 또한 EU는 2009년 리스본 조약을 통해 경제 뿐 아니라 사법, 안보, 의회 등 정치 통합등 높은 단계의 통합체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EU는 현재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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