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jyjang@sisabarotimes.com
[시사바로타임즈= 장혜린, 장훈녕기자]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위해 축조된 성이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흥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소의문.광희문.창의문)을 두었는 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숙정문.광희문.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한양도성은 1396년(태조 5)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목면(남산).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8m,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514년)성의 역할을 다한 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도중심의 역사는 발전되어있으며 쉽게 접할 수 있다. 제도사적 접근은 곧 국가를 역사의 주체로 파악한다. 비국가적 차원은 국가의 결과 내지 영향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경제적인 요인들은 경시되기도 한다.

사회경제적 측면은 역사학적 관찰의 중심이라기 보다는 국가적 활동의 배경 및 결과로서 간주되는 것이다. 결국 제도 중심의 서술 방식은 국가에 강조점을 둔 ‘위로부터의 역사’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러한 위로부터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엘리트 내지 지배층의 입장에 선 해석을 고무시키는 반면, 당대를 살아간 일반 민중의 관점은 주변적으로 취급되거나 무시되는 경향이 있어 왔다.

변화의 추진체로 개혁가 개인(혹은 집단)의 양심과 정열이 특히 부각되기도 한다. 이들의 전기적 스케치, 활동내용, 저서와 팜플렛에 나타난 주장내용등이 주로 다루어지며, 이들의 노력은 노력은 마침내 그에 부합하는 결실을 맺은 것으로 평가되기도한다.

역사를 만들어간 개인 중심의 역사는 그러한 개인적 활동의 배후에 놓여있는 관계와 상황에 대해 본격적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 전반적인 변화추세를 필연적이고 바람직한 개혁의 역사로 이해함으로써 목적론적 관점을 지니기도 한다.

개혁가의 이상과 그를 뒷받침한 개혁운동집단에 변화의 동인의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개혁이 가능하게 된 사회적 배경, 역학관계, 개혁이 지닌 함의 등의 맥락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