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jyjang@sisabarotimes.com
(절규, 1893)
가시의 정체를 볼 수 있다면 가시는 더 이상 가시가 되지 않는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노르웨이, 1863-1944)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절규’라는 그림은 기억한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자기 예술에 대한 일련의 모욕들에 대한 뭉크의 징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두 차례의 전쟁과 인류의 시련이 지난 뒤의 평가이긴 하다. 1905년은 20세기 미술의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해이다. 바로 이해에 표현주의와 야수파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뭉크와 같은 표현주의자는 객관적인 외부 세계를 묘사하는 것보다는 주관적인 감정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왜곡되고 과장된 형태, 원시적이고 즉흥적인 표현,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색채 등을 선호했다.
뭉크 자신은 ‘절규’ 이 그림을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나는 두 명의 친구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 줌의 우울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고 너무나 피곤해서 난간에 기대었다. 흑청색의 피오르드와 도시 너머에는 불로 된 피와 혀가 걸려 있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으나 나는 불안에 떨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울리는 커다랗고 끝이 없는 비명 소리를 느꼈다."
평생을 생에 대한 절망과 불안감에 시달렸던 화가 뭉크, 하지만 그는 죽음보다 격렬한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을 화폭 위에 옮겨놓았다. 뭉크에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일이었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체험을 화폭에 옮긴 정치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화가였지만 정치 이데올로기는 그를 이용했고, 똑같은 이유로 추방당했다. 우리는 뭉크를 통해 한 개인의 우울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이유로 우리는 우리 시대의 우울을 발견한다. 그 어떤 개인도 시대와 동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것을….
지난해 1200만여 명을 스크린 앞에 불러모은 영화 ‘베테랑’에 이어 올 들어 1000만 관객에 육박한 ‘검사외전’까지 부와 권력을 움켜쥔 소수의 일탈을 응징하는 판박이 구조로 잇따라 성공했다. 현실 속에선 난공불락인 이들이 영화에서나마 흠씬 두들겨 맞는 판타지를 통해 관람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어디서 올까? 그것은 우리의 감정에서 시작된다. 삶의 수많은 역경과 고난에도 자신의 내면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 내 삶의 의미도 모습도 달라진다. 내 몸의 가시가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다른 몸에 ‘전쟁’의 효과를 새기기 때문이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